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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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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당혹감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상식과 다른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대통령이 앞장서서 ‘선 지방 발전, 후 수도권 규제 합리화’를 약속한 지 3개월 만에 수도권 규제의 전면 해제에 나선일도 그런 일에 속할 것이다. 정부는 수도권공장총량제의 사실상 폐지로 수도권의 산업단지 내에서 대기업의 공장 신·증설 및 이전이 가능해졌으며, 산업단지 밖에서도 첨단업종 공장의 증설이 쉬워 져서 4조 원 가량의 생산 유발 효과가 나타나 국토이용의 효율화가 달성된다고 했다. 정말 수도권 규제를 해제되면 살기가 좋아질까? 당장은 교통이나 인력 수급 등의 편리함 때문에 수도권 공단에 기업들이 몰릴 수도 있다. 집적과 집중이 가져 오는 효율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적과 집중은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불러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수도권 집중은 교통 정체 심화, 인건비 상승과 같은 부작용을 불러오고 결과적으로 기업들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업종에 관계없이 공장 신증설을 허용할 경우, 오·폐수로 인한 먹는 물 오염, 막개발로 인한 땅값 상승 등 수도권 주민의 삶의 피폐화도 초래된다. 나아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부 재정 지출의 증가라는 악순환이 뻔하다. 수도권 환경 개선을 위한 재정 지출이 늘게 되면 낙후된 지방에 대한 정부의 투자는 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도 죽이고 지방도 죽이는 일을 국토이용 효율화라고 한다니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재정지출은 11조원 늘리고 세금은 3조원 더 줄이는 것으로 소문난 경제난국극복종합대책도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일 중의 하나다. 이 대책을 살펴보면 저소득층 복지지원을 위해 1조원 정도를 추가 배정한다고 했다. 그런데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우뚱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초생활 수급권자는 연평균 3.6%, 매년 3만5천 명 가량 늘어나고 있는데 정부 대책은 오직 1만 명만 늘어 날 것으로 계상했다. 경제위기로 수급권자가 예년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데 오히려 그 수를 작게 잡고도 저소득층 지원을 늘렸다고 발표한 것이다. 빈곤층 1인당 지원금을 10% 가량 줄여놓은 속에서 천정부지로 오르는 물가 속에서 빈곤층들은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따져볼 여유도 없음은 물론이다. 내용적으로는 지원 축소임에도 증액 배정이라고 발표하는 뻔뻔함에 숨이 턱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들의 윤리의식 조사 보고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방글라데시, 인도, 몽골과 한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윤리의식 조사 결과가 한국의 청소년은 4개국 중 최저의 윤리의식을 보여주었다. 정직하게 사는 것 보다 부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하는 청소년이 22%정도로 방글라데시 보다 일곱 배나 높은 수치였다. 다섯 중 한명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뇌물을 쓸 것이라고 했고, 여섯 중의 한명은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10억 원을 번다면 부패를 저질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부자가 되는 것이 최고인 아이들, 그러기 위해 무슨 수단이든 동원할 수 있다고 믿는 청소년들이 넘친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청소년들은 오히려 어른들과 우리 사회에 반문 할지 모른다.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직장을 얻어 돈 많이 버는 것이 최고라고 가르친 것은 당신들이라고. 표리가 부동한 사회현실 속에서 전도된 가치관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아니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일찍 배웠을 뿐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정부가 나서서 거짓을 진실로 보이도록 앞장서는 현실 앞에서 청소년들의 솔직한(?) 윤리의식은 우리들의 거울이요 자화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당혹스러운 현실에 대해 외면하지 않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관심이 필요하다. 당혹스럽다 해서 자신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문제를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글 |  김제선 정책위원장 /  공익적 시민활동을 지원하는 풀뿌리사람들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