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새해 다음날 저녁에, 옥천의 구읍에 넉넉한 모습으로 자리한 한옥 ‘춘추민속관’ 안채에서 열리고 있는 <평화의 마을 새해맞이 영성공동단식> 현장을 찾았습니다.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기막힌 세상에서, 굶는 즐거움을 기꺼이 나누고자 전국에서 모인 40여 명의 구도자들과 함께, 교육 선진국인 북유럽의 교육현실을 살펴보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각국의 학업성취도를 비교·평가하는 ‘학업성취도국제비교연구(PISA)’결과에서 계속해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핀란드는 수월성보다 형평성을, 평가보다는 배움을 중시하는 교육철학에 따라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여러 가지 재능을 동시에 기를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따라서 핀란드는 경쟁을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학력을 상향평준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1980년대의 세계적 현상인 시장지향교육정책(경쟁과 효율)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접근방법(협력과 평등)을 통해 교육개혁을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역사상 최초로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수호한 네덜란드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사회정의의 실현으로 봅니다. 세계 최초의 민주공화국답게, 네덜란드의 교육철학은 교육을 통해 빈곤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곤층이나 소수인종의 자녀와 실업계 학생에게 더 많은 교육예산을 지원합니다. 교육기회의 평등을 선언적으로 보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출발선의 차별적인 조건을 최소화합니다. 네덜란드의 이상은 이질적인 요소를 따뜻하게 포용하는 공생과 관용의 사회입니다. 핀란드인이 매사에‘딸꼬뜨’(Talkoot, 협력)를 외치듯, 네덜란드들인은 ‘허젤러흐’(gezellig, 편안함, 유유자적)를 도덕적 이상으로 삼습니다. ‘우리 모두 똑같이 잘하자’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나라 스웨덴은, 단 한 명의 외국인 학생을 위해 통역 선생님을 따로 붙여주며, 국영수를 아무리 잘해도 예체능에 소홀하면 상급학교 진학이 어렵습니다. 수업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깁니다. 학교는 무엇보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꿈꾸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15세 창의력 테스트에서 세계 일등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린이, 소수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옴부즈맨 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교육 선진국의 공통점은 공존과 협동을 중요한 교육이념으로 삼는다는 점입니다. 또한 뿌리 깊은 기독교 전통을 지녔으면서도 평생에 3번 정도(유아세례, 결혼식, 장례식) 교회에 가는 탈(脫)기독교적 모습 속에 절제와 박애, 평화와 관용 등 기독교적 가치관(루터교나 칼뱅주의)이 일상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복음주의 기독교가 지배적인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교회의 급성장으로 기독교가 사회적 기득권으로 작용하면서, 분리․ 배제․공격적 승리주의로 갈등과 분쟁을 오히려 조장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단 하나의 믿음과 시각만을 강요하며, 부자들의 이익을 옹호하고 비주류를 희생양으로 삼는 미국식 기독교 근본주의입니다.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을 장악해 시민을 복종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주의와 파시즘의 의제는 동일합니다. 그래서 ‘근본주의는 종교적 파시즘이고, 파시즘은 정치적 근본주의’라고 말합니다. 그것들의 특징은 종교와 정부가 하나로 얽혀 정부지도자들이 종교적 표현을 자주 들먹인다는 점입니다. 국민을 긍휼히 여기며 섬기겠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근본주의자들은, 가난하고 병들고 애통해하는 작은 자들과 고통을 나누었던 예수의 삶은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과 폭력을 포기하라는 그의 가르침은 애써 외면합니다. 예수의 평등과 사회적 연대의 가르침은 교육복지, 복지국가의 꿈과 일맥상통합니다. 긍휼의 라틴어 어원(pati+cum)은 ‘고통을 함께함’을 뜻합니다. 가난과 질병 등으로 애통해하며, 교육 불평등으로 미래의 꿈을 잃어가는 자들을 기억하는 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긍휼을 실천하려면 먼저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각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간디는 “한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면 전 세계가 성장한다.” 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요. 글 | 김영호 대전교육연구소장 tae83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