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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1년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2007년 대선에서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서 유권자들이 무엇을 위임했고 그것을 이명박 행정부가 실제로 실행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대의(代議) 민주주의에서 선거란 권한 위임과정이며 선거이후 경쟁에서 승리한 후보자의 공약이행(公約移行)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선거 승자들은 유권자들로부터 무엇을 위임받았는지를 제대로 따져 보고 ‘권력연합’을 구성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선거승자연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자는 정책에서는 ‘경제적 실용주의’를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영남지역주의’를 적절히 활용하여 선거에서 승리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명박 후보자의 ‘선거승자연합’은 ‘경제적 실용주의’와 ‘영남지역주의’의 정치적 조합이었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의 ‘권력연합’ 역시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명박 정부의 권력연합은 국민들이 요구한 성과주의(成果主義)(\"getting things done\")를 실행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져야 마땅했다. 왜냐하면, 2007년 대선 기간 동안 이루어진 ‘실용주의 헤게모니’란 정치 권력자들에게 국가기구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자신들이 희망하는 정책을 실행해 달라는 욕구의 폭발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선당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교육’과 ‘주택’문제를 다음 정부의 선결적 과제로 보았다(‘한반도 운하사업’은 다수 국민이 반대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이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가장 중요한 정책 사안은 ‘교육’과 ‘주택’문제이고, 이를 실용주의 접근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정치적 과제였다. 그러면 이명박 집권 1년 동안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하였는가? 간단히 말해서 선거 직후 실용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급격히 이동하였다.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미국에서 훈련된 신자유주의 정책 마피아를 대거 청와대와 행정부에 포진시켰다. 물론 이들 대부분이 ‘강부자’들이었다. 미국에서 훈련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고거들 (idealogogues)은 국민적 정책관심들(‘교육’과 ‘주택’) 보다는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험하고자 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세 가지 영역에서 진행되었다. 시장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는 문제, 공적 재산을 축소하고 사적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공기업을 구조조정 하는 문제, 마지막으로 국가의 부의 분배 기능을 축소하기 위해서 조세를 줄이고 복지체계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규제철폐는 재벌들이 사회경제 전 영역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대적인 민영화는 산업화 과정에서 구축된 공기업 체제를 근본으로부터 허물고 공공 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시장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전기, 가스, 물 등에 대한 민영화 계획이 시민사회의 강한 반대에 부닥치자 민영화 계획을 포기했지만, 여타 영역에서 민영화는 진행 중이다. 민영화는 공공요금의 인상을 가져오고 저소득층에 불리한 요금체계로 인해 양극화를 가속화 시키는데 기여한다. 그 뿐인가, 부동산 정책, 조세정책 등을 통해 부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실행함으로서 부자들에게 돈을 몰아주기 위한 정책을 실행했다. 소위 말하는 ‘trickle down’ 경제(‘윗물이 고여서 넘치면 아랫 사람들도 먹고 살만해 진다’)의 실현이다. 교육과 관련하여서도 교육 소비자들의 ‘선택과 자유’를 중시한다는 이유로 ‘교육기회균등주의’를 포기하고 부자들의 선택의 폭을 확장하기 위한 정책들(학교 평준화의 파괴와 사립학교 정책의 강화)을 대대적으로 마련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MB 정권은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1970년대 말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공공 서비스의 이념과 복지국가의 틀’이라는 구체제를 전면적으로 해체하기 위해서 국가폭력을 동원했던 것처럼, 신자유주의로 이행은 민주주의 후퇴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MB 정권이 한국사회에 신자유주의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한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1997년 이후 진행되어온 민주주의 체계를 허물어야 한다. 국가폭력은 이때 발생했다. MB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복지국가의 실패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공공 서비스 이념’과 ‘복지국가의 틀’이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휠씬 더 폭력적 양상을 띠고 진행될 수밖에 없다. 현재 ‘실용주의 권력(?)’을 선거를 통해 선택한 유권자들은 아연 실색하고 있다. MB 정권이 실행하고 있는 ‘천박한 폭력적 신자유주의’는 대의(代議)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라도 권력 담당자들이 하고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MB 정권에 대한 민심위반은 급격히 확대되어 왔고 앞으로도 급속히 진행될 것으로 판단된다. 글쓴이 : 장수찬(목원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