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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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민간인희생자대책회의(산내유족회) 총무를 맡고 계시면서 참여사무실 일이라면 두 손 두 발 마다않고 도움을 주신다는 문양자 회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날 약속을 할 때 어떤 모습일지 잘 떠오르지 않아 궁금하기만 했다. 문양자 회원의 세대에는 모두 다 어려웠을 게다. 게다가 생계 때문에 식당일도 하고 장녀로서 동생 두 분을 키우면서 5, 60년대를 지나오셨다. 이제는 자식들도 다 결혼시키고 가족의 건강만을 바라는 문화동 시민이 민간인희생자회 일은 빈틈없이 하고 계신다고 한다. 왜 일까? 민간인희생자 회원들은 모두 다 슬프고 안타까운 가족이야기가 있다. 문양자 회원이 6세 때 아버지는 31세의 젊은 신문기자셨다. 그러던 중 억울한 누명을 쓰고 10년 형을 선고받고 대전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게 되셨다고 한다. 이 때 어머니와 함께 면회를 간 기억이 생생하지만 그 이후에 아버지가 전쟁 전후로 언제 사형을 당하셨는지는 불분명하다고 한다. 최근 동구 낭월동(골령골)에서 단체로 수감자들이 사형을 당했다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문양자회원이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서 당시 판결문을 복사해서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의 청년시절에 찍은 사진들이 그 증거이다.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방에 고이 가져온 아버지의 사진을 보니 문양자 회원의 눈매가 젊은 남성의 눈매와 닮았다. 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한다. 희생자유족회 모임에 나오시는 분들 중 기억만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도 많다. 최연소 회원이 57세이시고 희생자유족회 실무를 도맡아 하시는 분들도 60대이시다. 우편작업에서부터 회원관리, 그리고 전국 연대활동까지 열심히 참여하고 계시지만 우리의 생생한 아픔의 역사가 끊어져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일이면서 동시에 우리 어머니의 가슴속에 맺힌 설움이 아직도 묵직하게 내려앉는데 젊은 자녀들에게는 전수되지 않는 것만 같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역사를 세상에 알려낼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희생자유족회원들이 다들 연로하시다는 게 이들에게는 더 큰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또한 월 1회씩 20여명의 회원들이 꾸준히 만나고 있지만 대전지역 언론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만 같아 외로운 투쟁이 되기도 한다. 관심과 지지, 그리고 참여 속에서 우리는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껴야 할 텐데 가끔 방송에 나올 때만 생각하다고 또 잊고 사는 게 우리들의 모습인가보다. 회원탐방으로 문양자 회원을 만나며 인터뷰를 해보니 내 스스로가 반성이 되고 인생의 선배를 만날 수 있어서 배우 것이 많은 하루였다. 그리고 젊은 세대가 우리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세대가 그 연결고리로써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책임을 느낀다. 참여 회원님, 대전민간인희생자대책회의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문양자 회원(대전민간인희생자대책회의 총무) 취재․글 / 이효숙 편집위원 E-mail : linana00@hanmail.net / 016-6728-5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