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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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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은아, 선생님 기억하니? 2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그때 여중 2학년이던 너는 서른여덟 살 아줌마가 되었겠구나. 좋은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중학생 쯤 된 자녀를 둔 학부형이 되었을까? 중학교를 다니는 딸을 보며 너의 여중 시절을 되돌아보기도 하니? 30년 긴 세월 참 많은 아이들을 만났지만, 혜은아 너의 이름은 첫 손에 꼽히는 아픈 이름이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결국은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던 네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양 볼에 보조개가 깊이 패던 예쁜 얼굴에 항상 웃음이 넘쳐서 네 아픔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지. 어느 날 가출을 하고 무단결석을 하면서 친구들로부터 네 사정을 듣고 나서 가정 방문을 했다. 시장 한 구석 좁은 가게에서 잔술을 팔며 생계를 꾸려가던 홀어머니와 가게에 딸린 방에서 살고 있더구나. 그 좁은 방에는 수시로 누군지도 모르는 아저씨들이 자고 간다 했지. 엄마랑 둘이 눕기도 좁은 방에서 잠든 척 숨죽이고 지새워야 했던 그 밤들이 얼마나 무섭고 싫었을지....네 몸을 더듬기도 하는 아저씨도 있었고 그것을 견디지 못한 너는 가출을 했다. 겨우 겨우 수소문하여 너를 좋아하던 2년 선배 남학생과 함께 헤매고 있던 너를 찾았다. 그 후로도 너는 수업료를 내지 못해 서무실에 불려 다니거나, 아이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돌거나 하면 가출을 수시로 했다. 결석이 잦고 숙제도 잘 해오지 않고 복장도 불량한 너는 선생님 사이에서도 문제아로 뽑혔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너의 노력이 허사였지. 난 그때 네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어. 그 지긋지긋한 가난 앞에 가난한 교사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수업료 한두 번 내주고 퇴학 처분을 막는 정도였지.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에 올라가면서 너는 다른 선생님 반이 되었다. 나도 3학년을 맡게 되었으니 너를 우리 반으로 편성할 수도 있었지만 난 부끄럽게도 짐을 벗어버리는 듯한 기분으로 우리 반에 편성되지 않은 것을 좋아했다. 3월 한 달을 넘기면서 넌 결국 퇴학 처분을 받아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23년이 흐르도록 소식 한 마디 전해 듣지 못했구나. 그 23년, 중학교 졸업장도 없이, 도움을 주는 가족도 없이, 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야 했을 그 세월이 또 얼마나 힘겨운 나날이었겠니? 소풍 가서 장기 자랑할 때 흐드러지게 노래 부르던 네 모습이 떠오른다. 그토록 잘 부르는 노래를 친구삼아 꿋꿋이 살아내었니? 험한 세상, 의지하며 살아갈 반려자는 만났니? 너처럼 예쁜 딸 낳아 곱게 잘 키우고 있니? 오래 전, 네 마지막 학창 시절에 너를 위해 좀더 힘을 쏟지 못했던 기억이 나를 여태 아프게 한다. 꼭 한 번 너를 만나고 싶구나. 미안하고 부끄러운 내 마음을 털어놓고 너를 힘껏 안아주고 싶구나. 혜은아. 보고 싶다. 건강해라. * 참여자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3-17 10:22)